2024. 11. 27. 06:30ㆍ카테고리 없음
241128 (목) 장타율 + 득점 타이틀에… MVP까지 휩쓴 KIA 김도영
“그날 제가 컨디션이 안 좋았다 생각을 한다. 다음 목표는 만장일치 (MVP)가 될 것 같다.” 장타율, 득점 타이틀에 MVP까지 휩쓸었지만, 김도영(KIA 타이거즈)은 만족하지 않았다. 다음 목표는 만장일치 MVP다. 김도영은 11월 26일 서울 롯데호텔 월드 크리스탈 볼룸에서 열린 2024 KBO 시상식에서 장타율, 득점 타이틀과 함께 MVP를 수상했다. 2022년 1차 지명으로 KIA의 부름을 받은 뒤 지난해까지 187경기에서 타율 0.277 10홈런 66타점 38도루를 써낸 김도영은 올해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발돋움했다. 141경기에 나선 그는 타율 0.347(544타수 189안타) 38홈런 40도루 109타점 143득점 OPS(출루율+장타율) 1.067을 작성했다.
아쉽게 홈런 2개가 모자라 40홈런-40도루 클럽에는 가입하지 못했지만, 김도영은 올해 찬란한 업적들을 세웠다. 득점과 장타율(0.647) 부문에서 모두 1위에 올라 2관왕을 차지했으며, 최연소 30-30 달성, 역대 최소 경기 100득점, 역대 단일 시즌 최다 득점 등 각종 신기록들을 써내려가며 KIA의 V12에 앞장섰다. 다만 기대를 모았던 만장일치 MVP는 불발됐다. 김도영은 MVP 투표 총 101표 중 95표를 받아 득표율 94.06%를 기록했다. KBO리그에서 만장일치 MVP는 원년이었던 1982년 박철순(OB 베어스)이 유일하다.
시상식이 끝난 뒤 만난 김도영은 “(만장일치 MVP를) 기대했다. 그날 제가 컨디션이 안 좋았다 생각을 한다”며 “다음 목표는 만장일치가 될 것 같다”고 두 눈을 반짝였다. 이날 김도영은 멋진 하얀 정장으로 많은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그는 “아직 저는 어린 나이이기도 하고 시상식 중에서도 이번이 가장 큰 시상식이라 들었다. 남들과는 다르게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고 배시시 웃었다.
김도영은 수상 직후 인상적인 소감을 남겼다. 당시 그는 “부정적인 순간들로 가득차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럴 때 저에게 누군가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너를 믿어라. 나중에 누군가는 너를 보며 위안을 얻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런 날’들이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저를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도영은 “가족들하고 상의를 했다. 배우들의 시상식을 SNS에서 봤다. 인상깊게 봐서 남들과는 다르게 마음을 울리는 인터뷰를 하고 싶다 생각했다. 누나들과 상의해서 고른 멘트였다”며 “최근에 박보영씨 인터뷰를 봤다. ‘밤을 오랫동안 맞이하고 계신 분들이 꼭 아침을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울컥하게 만들더라. 저는 감성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공감을 하면서 이런 말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가족 이야기 할 때는 울컥했다. 프로 선수 되기 전 가족들이랑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생각을 한다. 가족들에게 먼저 감사함을 표했고, 앞으로도 감사한 일들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0홈런-40도루 클럽에 가입하지 못한 아쉬움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동력으로 삼는다. 김도영은 “40-40을 달성하지 못해 오히려 뿌듯했다. 달성을 했다면 저 스스로 야구를 너무 쉽게 봤을 것 같다. 앞으로는 달성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을 할 것 같다. 다른 선수들을 생각해서라도 매 타석 신중하게 더욱 진지한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야구를 할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김도영은 “홈런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홈런 1위에 한 번씩 갈 때마다 신기해서 그 장면을 캡처해 놓기도 했다. 솔직히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지만, 비등비등하게 간 것이 너무 신기하다. 어떻게 그런 많은 홈런을 쳤나 신기했다. (홈런 1위에 오른) 맷 데이비슨(NC 다이노스)이 새삼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고 이야기했다.
올해 30개의 실책을 범한 김도영은 또한 수비를 보완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김도영은 “수비상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정상적인 3루수만 되기를 바란다. 올해 초반에는 진짜 형들 얼굴을 못 볼 정도로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며 “초반 목표가 무난하게 하루만 지나갔으면 좋겠다였다.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 무난하게만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수비상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냥 타구가 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안정감이 드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행히 최근 펼쳐진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에서는 보다 견고한 수비를 펼친 김도영이다. 류중일 대표팀 감독은 김도영에게 수비가 많이 늘었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김도영은 “너무 감사했고 뿌듯했다. 류중일 감독님께서 작년에 봤을 때보다 수비가 훨씬 늘었다 말씀해주셨다.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류중일 감독님과 류지현 코치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하고 싶다. 류중일 감독님 같은 경우에는 저를 밀착으로 지도해주셨기에 더 감사하다”고 진심을 표했다.
계속해서 김도영은 “(내년 시즌) 부담은 아직까지 크게 없다. 30-30, 20-20을 하지 못하더라도 수비에서 실책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것 같다. 그렇기에 저는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먹고 수비에 집중한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김도영은 “이번 비시즌 (벌크업과 기술 훈련) 2개를 같이 할 것이다. 기술 훈련은 올해 안 쉬고 계속 해볼 것이다. 올해 믿고 안 해버리면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후회없이 똑같이 하려 한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김한수의 오마이갓… 사찰의 옛날 김장 풍경
이번주 들어 갑자기 찬 바람이 불어 앙상한 가지에 남아있던 단풍이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비에 우박까지 겹치면서 본격적인 겨울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김장김치가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오늘은 사진 몇 장을 통해 사찰의 김장 풍경 변화를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사찰에서는 스님들이 직접 겨우내 먹을 김장을 담그는 것이 전통이지요. 사찰의 김치는 일반 가정의 김치와 달리 이른바 오신채(五辛採)라는 달래, 마늘, 부추, 파, 흥거와 젓갈을 넣지 않지만 시원한 맛이 일품입니다. 사찰에 따라 맛도 조금씩 다르고요. 사찰의 김장 전통도 세월의 흐름따라 바뀌어 간다고 합니다.
첫 사진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4년 해인사의 김장 풍경입니다. 그런데 사진으로만 봐서는 해인사라는 느낌이 없지요? 대적광전, 장경판전 등 전각도 보이지 않고요. 사연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해인사 김장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배추 수 천 포기를 소금물에 재우고 양념을 하는 장면이 장관일 것 같아서요. 천년 고찰의 전각을 배경으로 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승복 입은 스님들이 정성을 다해 김장을 담그는 ‘정갈한 풍경’을 기대했지요. 드디어 그해 12월 1일에 김장을 담근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사진부 선배와 함께 달려갔지요. 그런데, 막상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해인사 뒤뜰엔 푸른색 포장 비닐을 덮은 거대한 ‘수조(水槽)’가 있더군요. 마치 여름철 일회용으로 만든 풀장처럼 벽을 세운 수조였습니다. 수조 옆에는 역시 푸른 비닐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나중에 들으니 8000포기였다고 합니다) 배추를 스님들이 칼로 다듬고 있었습니다. 수조 안에는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은 스님들이 들어가 있고요. 수조 안에는 소금을 푼 물이 가득했지요. 다듬은 배추를 던지면 소금물에 넣어서 재우는 것이죠. 한마디로 그냥 ‘김치 공장’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8000포기 김장을 하려면 컨베이어벨트처럼 일사불란하게 분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됐던 것이지요. 게다가 넓은 공간을 택하다 보니 사진부 선배가 아무리 앵글을 바꿔보아도 대적광전이나 8만대장경을 모신 장경판전은 한 화면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사찰의 김장 풍경’이라기 보다는 ‘김치 공장’ 같은 느낌이었지요. 결국 그날 해인사 김장은 ‘그림이 되지’ 못했습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 묘장 스님은 지난 2017년 불교신문에 ‘해인사 김장’이란 칼럼을 실었습니다. 스님은 “김장철이 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며 해인사에 살던 시절 김장 풍경을 적었습니다. 스님은 “해인사 김장 김치는 예부터 짜기로 유명했다”고 했습니다. 많은 인원이 겨우내 먹어야할 기본 반찬이기 때문에 짜게 담갔던 것이죠. 묘장 스님 당시에는 대중 스님들이 “김장김치를 짜지 않고 맛있게 담그자”고 뜻을 모았다고 합니다. 배추를 절일 때 소금물에 담그는 시간도 줄이고 양념에도 소금을 적게 넣었다고 하지요. 김장 직후 먹은 김치는 혀끝에 군침이 돌 정도로 감칠맛이 났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상에 올라온 김장김치는 그 김치가 아니었답니다. ‘전통의 해인사 김장 김치’ 그대로 무지하게 짠 맛이었다지요. 내막은 이랬답니다. 김장을 담가 독에 넣은 날 밤 노스님 한 분이 김치 맛을 보고는 독마다 소금을 한 바가지씩 넣었답니다. 문제는 다른 노스님들도 소금을 한 바가지씩 부었다는 것이죠. 시주를 아껴 사는 것이 몸에 밴 노스님들의 생활 습관이었던 것지요. 덕분(?)에 해인사 스님들은 그해에도 짠 김장 김치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또다른 풍경은 송광사입니다. 송광사 김장 풍경을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 조선일보 명상면 ‘마음을 찾는 사람들’을 통해 인터뷰한 김재성 능인대학원대학교 교수의 체험담입니다. 당시 기사에 소개한 것처럼 고교 시절 우등생이었던 김 교수는 1980년 ‘학력고사’를 한 달 앞두고 송광사로 출가했던 이력이 있습니다. 그해 10월말 송광사로 출가한 그에게 스님들은 1주일 동안 아무 일도 안 시키고 심지어 밥도 방에 갖다주었답니다. 완전히 손님 취급한 것이죠. 화장실도 갈 겸 경내를 돌아다니면 ‘방에 들어가라’고 했답니다.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니고 뭔가 묘하게 불편한 상태였다네요. 아마도 스님들은 ‘얼마나 버티나 보자’는 마음도 있었겠지요. 출가하겠다고 왔다가 2~3일만에 마음이 바뀌어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네요. 그렇게 1주일이 지나니 비로소 행자복을 주고 일을 시켰답니다. 김장 준비가 시작이었답니다. 당시 송광사는 배추 3000포기를 담갔다고 합니다. 김장에 1주일이 걸렸고요. 밭에 심은 배추를 뽑아서 자르고 닦아서 목욕탕에서 소금물에 절였다고 합니다. 당시 스무명쯤 되던 행자들이 모두 열심히 김장을 담갔다고 하지요. 김 교수는 당시 신심이 나서 열심히 일하다가 허리를 다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얼마 전 법보신문엔 1960년대 송광사 김장 풍경 사진이 실렸습니다. 황정일 동국대 대우교수가 제공한 사진입니다. 사진 왼쪽에선 스님들이 절인 배추를 손수레에 실어와 쇠스랑으로 건져 올리고 있고, 오른쪽에선 배추를 자르고 다듬는 모습입니다. 황 교수는 2002년 경향신문에 실린 영진 스님(현 송광사 회주)의 인터뷰를 인용했는데요, 여기서도 ‘짠 김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진 스님이 처음 절에 왔을 땐 큰스님들이 “소금을 많이 치라”고 했다지요. 그런데 2002년 당시에는 이미 소금을 많이 못 치게 한다고 했답니다. 몸에 좋지도 않고 스님들도 짠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이지요.
작년에는 가을에는 송광사 배추 뽑는 장면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방장 현봉 스님 등 송광사 스님 70여명이 밭에서 배추를 뽑아 나르는 사진이 실렸습니다. 당시 기사에선 1500포기를 뽑았는데 전년도 2000포기에 비해 500포기가 줄었다고 했습니다. 또 5년 전까지는 개울물을 막아 배추를 씻고 소금에 절였는데, 송광사 주변의 배추 절이는 공장에 일감이 줄어서 배추 절이는 일은 공장에 맡긴다고 했습니다. 사찰의 김장 풍경도 세월에 따라 변하고 있습니다. 이젠 사찰에서도 짠 김치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뿐 아니라 김장하는 배추의 양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출가자가 줄어들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사찰의 김장 풍경이 또 어떻게 변할지 궁금합니다.
글이 길이 되고 숲이 되고… '한강'이 흐르는 문학의 산줄기
‘노벨 문학도시 장흥’. 장흥 읍내로 통하는 국도 중앙분리대에 일렬로 세운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인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에 대한 헌사다.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딴 기념관이나 문학관 설립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혔음에도, 한강에 대한 장흥군의 짝사랑은 그치지 않을 듯하다. 읍내에서 약 27㎞ 떨어진 천관문학관 외벽에도 ‘어머니의 품 장흥에 뿌리를 둔 소설가 한강, 한국인 첫 노벨문학상 수상’ 경축 현수막이 커다랗게 내걸렸다. 마치 ‘한강의 발원지는 장흥’이란 선언처럼 보인다.
◆ 바위에 새긴 우리 시대 문학… 천관산문학공원
한강은 부친이자 소설가인 한승원(85)이 교직 생활을 할 당시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 한승원은 장흥 회진면에서 태어나 현재 안양면에 ‘해산토굴’이라는 집필실을 마련해 부인과 함께 지내고 있다. 장흥의 ‘한강 앓이’는 2019년 작가가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시작됐다. 장흥 출신 문인과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천관문학관은 그때부터 한강에게 전시관의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로비 벽면에는 한강의 작품이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부친에게 보낸 어버이날 감사 편지도 사본으로 붙여 놓았다. 한강과의 인연이라면 한 조각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하다. 전시관 안에도 한강이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작가 연보와 함께 대표작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 소개가 벽면 하나를 장식하고 있다.
천관문학관이 설립된 건 한강이 오늘날처럼 이름을 알리기 훨씬 전인 2008년이다. 남해 끝자락에 우뚝 솟은 천관산(723m) 자락에 문학관이 들어선 건 장흥 문학의 뿌리가 그만큼 깊고 넓기 때문이다. 첫 자리는 조선 명종 때 문인 기봉 백광홍(1522~1556)이 차지하고 있다. 그의 ‘관서별곡’은 국내 기행가사의 효시로 평가된다. 정철의 ‘관동별곡’보다 25년이나 앞선 것으로, 평안도평사에 제수되어 출발하는 것부터 부임지를 순시하기까지의 노정을 운치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전시의 중심은 장흥 출신으로 이름을 날린 소설가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다. 이청준과 한승원 생가는 문학관에서 불과 10km 정도 떨어져 있다. 특히 두 작가는 고향에서의 기억과 풍광이 문학의 자양분이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이청준의 소설 ‘눈길(1977)’에 등장하는 산길과 삼거리는 실제 고향 진목마을과 대덕읍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굽이굽이 외지기만 한 그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오목오목 디뎌 논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한승원도 '안개바다(1979)' 후기에서 “나는 내 살과 뼈를 키워 준 바다와 섬과 거기에 내린 안개와 이슬에 대하여 늘 고맙게 생각한다... 갯벌물 뒤집어쓰고 짱뚱어 뛰듯 하며 사는 내 형제와 이웃들의 삶을 사랑한다”고 했다. 한강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기 전까지 문학관은 이승우(65)를 노벨상 수상이 유력한 작가로 소개해 왔다. 문학관이 소재한 관산읍 출신으로, 특히 프랑스 문단과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아 온 작가다.
문학관 뒤편 산자락에는 천관산문학공원이 조성돼 있다. 정상에서 문학관까지 산줄기가 가파르게 쏟아지는데, 겨울에도 상록활엽수로 푸르른 남도의 다른 산과 달리 소나무가 많다. 이를테면 빼어난 산세에 비해 식생이 부실한 편인데, 문학공원은 이를 만회하려는 지역민의 노력으로 조성됐다. 대덕읍 주민들은 천관산을 남도의 명승지로 가꾸고자 매년 수천 그루의 단풍나무를 심고, 3㎞ 등산로에 돌탑 400여 개를 쌓았다.
문학관에서 문학공원까지 1.5㎞는 차로 쉽게 오를 수 있다. 문학공원은 주차장 주변에 조성돼 있다. 지그재그 탐방로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50여 시인, 소설가, 수필가의 문장을 새긴 바위가 늦가을 단풍과 어우러져 있다. 문학의 숲이자 글의 향연이다. 국내 유명 작가의 글에서 정수만 골랐으니, 누구라도 자신의 심정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글귀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다.
천관산 등산도 이곳부터 시작되는데 탑산사를 거쳐 정상까지는 약 2㎞, 길이 험하고 가팔라 2시간은 잡아야 한다. 대안으로 500m 위쪽 닭봉까지만 올라도 장쾌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역시 경사가 심해 오르는 데만 20분 이상 걸린다. 닭 머리 모양 바위 봉우리에 서면 탑산사를 중심으로 천관산 줄기가 우람하게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넓은 간척지 뒤로 다도해가 아른거린다. 능선은 이미 갈색으로 변해가는데, 산 아래 들판은 푸릇푸릇하다. 글 줄기 흐르는 문학의 골짜기가 서서히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장흥군은 천관문학관에서 해산토굴까지 주요 명소를 연결해 ‘득량만 소설길’로 이름 붙였다. 이청준의 소설에 등장하는 대덕읍삼거리, 그의 묘소인 이청준 문학자리, 진목마을 생가,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 배경인 선학동마을, 한승원의 고향 회진포구와 정남진전망대, 이승우의 단편 소설 ‘샘섬’ 배경지, 이청준의 소설 ‘축제’와 동명의 영화 배경인 소등섬, 수문해수욕장 부근 한승원문학산책로를 거치는 길이다. 걷기에는 턱없이 먼 거리라 차로 주요 지점을 돌아볼 수 있다.
◆ 교도소 장면은 다 찍었다… 빠삐용집(Zip)
옛 장흥교도소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화인에게는 유명한 곳이다. 2015년 새 교도소가 마련된 후 문을 닫은 교도소는 2019년부터 드라마, 영화 촬영지로 개방하며 지금까지 70여 편을 찍었다. 교도소가 등장하는 웬만한 작품은 모두 찍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촬영장으로 인기를 끈 배경은 실물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재소자들이 실제 거주한 방과 작업장, 이들이 오가던 긴 복도, 5개의 감시탑 등은 실감 나는 영상을 원하는 이들에게 최적의 조건이다.
촬영장으로만 활용되던 이 교도소가 12월 말 ‘빠삐용집(Zip)’이라는 명칭으로 일반에 개방될 예정이다. 민원봉사실은 장흥교도소 아카이브로, 직원식당은 교정역사전시관으로 새로 단장했다. 교도관 체력단련장인 연무관은 ‘영화로운 책방’, 여사동은 작가들을 위한 ‘글감옥’으로 변신한다. 장차 ‘감옥당’ 빵집과 ‘호텔 프리즌’도 문을 열 계획이다. 영화 주인공 빠삐용은 프랑스어로 나비라는 뜻이다. 빠삐용집은 억압과 구속으로부터 변신하고 해방을 꿈꾸는 자유 존재에 대한 은유다. 김영현 옛 장흥교도소 문화재생사업단장은 "세상이 감옥 같고, 삶이 형벌 같을 때 사색과 해방의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빠삐용집과 함께 가볼 곳으로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있다. 장흥은 동학농민혁명의 최후 격전지다. 기념관 앞 석대들에서 1894년 12월 남도까지 밀려난 동학농민군이 전열을 가다듬고 일본군 및 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현재까지 밝혀진 전사자만 345명, 실제로는 1,500명 이상의 농민군이 이 전투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념관에는 당시의 기록과 무기 등이 전시돼 있고, 영상과 체험 시설로 현장을 실감할 수 있도록 꾸몄다. 22세 여성농민군 지도자 이소사, 13세 소년 장수 최동린, 농민군을 피신시킨 열여섯 소년 뱃사공 윤성도 등의 사연에 가슴이 뭉클하다.
장흥의 문인들이 이에 무심할 리 없다. 송기숙의 ‘녹두장군’, 이판식의 ‘탐진강’, 한승원의 ‘동학제’는 공통으로 동학농민혁명을 다루고 있다. 기념관에 작품 소개와 함께 작가의 관점을 전시해 놓았다. 한승원은 “동학은 먼바다에서 시작하여 고부와 전주, 공주 우금치까지 뻗어 갔다가 다시 바다로 되돌아왔다”고 언급했다. 인근 정남진편백숲우드랜드는 장흥의 대표 관광지다. 무장애 산책로를 걸으며 한겨울에도 푸릇푸릇한 기운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면 정남진천문과학관의 별보기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권할 만하다.
◆ 짭조름한 바다 향… 장흥의 겨울 맛
장흥의 겨울 별미를 꼽자면 단연 ‘굴구이’다. 득량만에서 채취하는 굴은 이듬해 2월까지가 제철이다. 소등섬이 위치한 용산면 남포마을과 관산읍 고마리 해안에 굴구이식당이 여럿 있다. 솥뚜껑보다 큰 불판에 싱싱한 굴을 잔뜩 올려서 구운 후, 껍질이 열리면 탱글탱글한 알을 꺼내 먹는다. 상에 장갑과 칼이 준비돼 있다. 굴무침, 굴전, 굴라면도 별미다.
홍어삼합에서 차용한 ‘장흥삼합’은 지역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 특산물인 키조개 관자와 표고버섯, 한우의 조합이다. 바다, 산, 들판의 먹거리가 어우러졌으니 맛이 없을 수 없다. 읍내 정남진 토요시장에 장흥삼합 식당이 많다. 정육점에서 쇠고기를 별도로 사오면 상차림 비용을 따로 받는 식이다. 장흥삼합은 사합, 오합으로 진화하고 있다. 읍내 신가네 식당은 낙지나 주꾸미를 더한 삼합이 주메뉴다. 전골냄비에 채소와 함께 푸짐하게 담아 회로 한 번, 익혀서 또 한 번 즐길 수 있다.
첫눈부터 폭설…'기상관측 117년 만에 11월 최고 적설량'
서울 전역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11월 27일, 서울에 16.5㎝에 달하는 폭설이 내렸다. 근대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11월 적설량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서울 종로구 기상관측소 기준 일최심 적설은 오전 7시에 기록된 16.5㎝이다.
하루 최심 적설은 하루 중 눈이 가장 많이 쌓였을 때 적설을 말한다. 이는 1907년 10월 서울에서 근대적인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11월 최고치다. 기존 서울 11월 일최심 적설 기록은 1972년 11월28일의 12.4㎝이다. 밤사이 서울을 포함한 중부지방에 20cm가 넘는 폭설이 쏟아지며 곳곳에 대설특보가 내려졌다.
서울과 경기 남동부, 전북 진안에는 대설 경보가 발효 중이며 밤부터 중부지방과 남부 내륙 지역에는 많은 눈이 더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예상 적설량은 경기 남부 내력과 강원 내륙, 산지에 최대 20cm 이상, 충북 북부와 전북 동부, 제주 산지에 최대 15cm, 서울 등 그 밖의 수도권에도 3~10cm 이상이다.
첫눈이 폭설로 내린 원주 명륜동 11월말 설경....!!!!!!!
이틀 동안 20cm가 넘게 폭설로 내린 올겨울 첫눈......
단풍잎이 떨어지기도 전에 폭설을 맞는다
09:28 치악예술관 단풍에 내린 첫눈 폭설.......
빨간 단풍잎 위에 흰눈이 덮여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치악예술관 설경 속으로.......
잎을 떨군 단풍나무에도 소복하게 눈이 덮였다
폭설을 맞은 단풍나무.....
치악예술관 11월말 설경.......
눈폭탄을 맞은 산수유.......
원주종합운동장 둘레숲 설경........
눈에 덮인 원주종합운동장.......
오늘 저녁 원주DB와 고양 소노의 농구경기가 열릴.... 원주종합체육관
눈폭탄을 맞은 둘레숲길 단풍나무........
5번국도..... 서원대로
남원로 527번길의 단풍나무........
10:15 삼성으로 회귀.......
***** 감사합니다 *****